잘하지 마세요. 너무 잘하지 마세요. 하루는 이런 날이 있었다. 교수가 칠판에 숫자와 학생들의 이름을 적더니 이번 중간고사 평가 순위라고 했고 그 순으로 미팅을 진행한다고 하셨다. 납득이 안 가는 게 수두룩했다. 예를 들면 중간고사를 시간 안에 안 낸 학생이 나보다 위라던가 분명히 애니메이션이나 움직이는 무언가를 넣으라고 하셨는데 과제 이해도에 대한 순위는 전혀 아니었다. 무엇보다 교수가 학생을 평가한 순위가 아니라 학생들끼리 평가한 순위다. 나는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었는데 마지막에 이름이 적힌 친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자극을 받았으면 해서 그랬다고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너무 잘하지 말자.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자. 한국에서 살면서 숫자로 자신이 평가되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영어 알파벳으로 평가하던 고등학교 때도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거고 이건 내 개인 작업물이고 배움의 과정이지 회사나 돈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돈을 내고 내 배움을 이어 나아가는 거지. 나는 그 하루가 너무나도 아쉬웠다.
내가 아쉬운 이유가 내 순위가 중간에 머물러서가 아니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물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도 물론 궁금했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내 작업물에 대한 존중을 받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사람을 설득하며 박수를 받는 작업을 하려고 한건 아니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면 이미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아가 어떤 돌멩이에도 걸리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었을 거다. 아마 나는 화가 났을 수도 있다. 나는 항상 내 과제에 대해 재미를 붙여서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재밌어서 과제를 하는 건데 다음에는 왠지 내가 순위를 신경 쓸까 봐 걱정되었다. 고등학생 2학년 때는 미친 듯이 공부만 했다. 그리고 전교에서 2등을 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내 성적은 바닥을 쳤지만 나는 그때도 이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로서 배움에 틀에 들어간 거지 누군가와 비교해 나를 평가하려고 공부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믿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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