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만난 친구가 이십 대 중반. 대학을 졸업하며 자신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한 개인 졸업 전시를 열었다. 친구의 졸업 전시를 본 후기를 남겨보고자 한다. 우선 가기 전 꽃집에 잠시 들렀다. "친구가 졸업을 했는데 꽃이 필요해서요. 혹시 저 꽃으로 꽃다발을 선물할 수 있을까요?" 내 물음에 꽃집 사장님께서는 흔하지 않아 잘 들어오지 않는 꽃이라고 설명했고 나도 처음 색을 가진 카네이션이 전시를 더 빛내주길 바라며 가격도 안 물어보고 카드부터 내밀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꽃다발을 한 손에 들고 전시에 갔다.
KIM JEE HYUN GRADUATION CEREMONY : 청춘의 끝에서 느림의 시작으로.
위치는 망원역과 가까이 있는 논스케일드 갤러리 지하 1층에서 진행되었다. 생각보다 깔끔하게 잘 꾸며져 있어서 어떤 전시를 보게 될 건지 궁금했다. 전시장에 내려가 메뉴를 보니까 친구가 대학 생활에서 들었던 과목들과 교수진으로 구역과 테이블을 나눠서 흐름이 이어지도록 기획한 모양이다. (처음에 컨셉은 음식점인가 싶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답안지를 전시가 되어 있었다. 유리잔에 향을 뿌리기도 하고 그랬는데 전체적으로 자율적으로 보는 전시는 아니고 친구가 차근차근 설명해 주면서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되어 있었다. (친구가 설명해주는 게 너무 좋았음...👍)
친구의 과제를 직접 찢어보고 구겨도 보았다.😶
친구가 설명했다. 앞으로 인생의 기로에서 결단력이 필요한데 망설이는 순간이 오지 않게 자신의 과제를 찢고 구겨서 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나도. 내가 디자인한 결과물들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려버릴 때가 많았다. 과제를 할 때도 회사에 다닐 때도 나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모든 결과물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왜냐고? 그 과제가 내 머릿속에 남아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한 상상과 생각으로 지루해질까 봐. 단순히 그게 걱정이 되었었지. 그게 생각이 났다. (과감하게 버릴 건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발자취를 하나씩 되돌아본 친구가 참 고생이 많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친구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다른 환경, 다른 공간, 또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두고 같은 시간에서 살았다는 걸 느꼈다. 자신이 대학생활에서 입었던 옷들을 걸어두고 읽었던 책들을 올려 전시하고 그동안 배운 것들을 다른 이에게 보이면서 자신을 증명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만큼 그는 열심히 살았다는 거다. (지현이 고생 많아써💗)
얘기를 들어보니 친구는 손 필기를 하다가...
패드로 간 후 다시 손필기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ㅋㅋㅋㅋㅋ)
.
확실히 패드로 정리한 게 더 깔끔하고 그랬다. (ㅋㅋㅋㅋㅋ😅)
(근데 나는 손글씨를 좋아함...)
이 전시는 생각보다 참여해야 하는 부분이 엄청 많았다. (정말 생각 많이 하면서 준비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질문지 중에서 '나를 언제나 지지하고 사랑하는 동물은?'을 선택했다. (친구가 전시를 보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참여를 유도했다는 게 느껴졌다.☆*:.。. o.。.:*☆) 나는 반려동물. 태양이와 도니를 적었다. 언제나 나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동물은. 정말 그들이니까. 나를 언제나 지지하고 있는 사람은 나고 사물은 잘 모르겠다. 나는 망설임 없이 적었다. 내가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내 곁에 있어주는 태양과 도니에게 고마웠다. (지지와 사랑은 사람을 나아가게 하는 법이니까.💛)
비밀의 방에 들어가니 영상이 있었다. 박카스 하나를 마시며 영상에 나오는 질문들에 답하는 친구를 보았다. 눈물도 많고 어리고 여린 친구. 자신이 가는 길에 많은 언덕과 벽, 넘어야 할 장애물들을 고스란히 느리지만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말한다. '속도' 사실은 나도 꽤나 느린 편이다. 무언가 하나를 배우는데 느리지만 천천히 오래 하는 편인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나도 알고 있다. 때로는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과 내가 맞지 않아 느끼는 자괴감. 고개를 들고 높이 올라간 사람을 바라보며 작아지는 자아. 뒤얽혀 섞여있는 상황들조차도 나를 괴롭히고 방해하기도 한다. 그런 현실에서 남들보다 느리게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거북이는 결국 토끼를 이기지.🐢)
비밀의 방에서 나와 의자에 앉아 친구의 질문에 답을 했다. (금쪽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후회하는 것. 바꾸고 싶은 것이 있는지 내게 물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후회도 바꾸고 싶은 것도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온전하고 이상적인 조각들로 바꿔 내 인생을 다시 맞출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다만 나는 그러지 않을 거다. 또 친구는 내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도 물었다. 나는 그 부정적인 감정에서 내가 지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게 내가 그 감정을 배우는 방법이니까. 불안하고 슬프고 아프고 견딜 수 없는 시련이 내 앞을 서성이다 떨어져도 나는 그걸 피해서는 안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같이 찍은 사진도 보고 즉석 사진도 찍어서 같이 걸어두었다. 그동안 받은 편지들과 다녀온 공연, 여행 그런 것들을 전시해 두었다. 친구의 매니저가 온 거 같은데 더 자세히 구경할까 하다가 자리를 비켜주기로 했다. (매니저랑 사이가 좋길래...😂) 하여튼 이번 개인 졸업 전시는 내가 친구의 졸업을 축하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되었고 친구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항상 개인 전시를 보면서 느끼는 점은 기획한 부분이 더 쉽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무엇을 의도하고 어떻게 진행되길 바라는지 직관적이라 즐기는데 어렵지가 않았다.
친구의 개인 전시를 보면서 느낀 점은 단지 그가 하얀 전시장을 하나씩 채워오고 준비한 것과 같이 앞으로도 더 가득 채워질 자신만의 공간에 가끔은 나를 초대해 보여주고 공유하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더 어른이 되어서도 갖고 있기를...🙏🏻 (지금의 모습을 해치지 않고 잃지 않길 바랐달까?)
나라는 사람도 나의 공간과 내 생각. 내가 지나온 길. 적은 글씨. 내 인생이라는 전시에 무엇을 채우고 어떤 걸 그리고 누구와 함께해. 또 그들을 참여하게 할 것인지. 기획하고 구성하고 실행하고 정리하고 종료하는 데까지. 너무 크고 작지 않더라도 조금 느리더라도 나만의 속도로 만들어가길...🙏🏻
친구 지현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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