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나는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일기를 썼다. 그리고 지금은 일기장을 사지 않는다. 나의 일기장은 감정 쓰레기통으로 변해갔다. 나는 언제나 "안녕 일기야"라며 내 일상을 일기에게 적어서 공유했다. 내가 느낀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적어서 넣어두었고 방 한 칸 커다란 상자 속 들어 있는 나의 일기장들을 열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새로운 이름을 쓰고 있어서 본명은 그냥 올리기로 했다.)
정리 좀 할까... 버려야겠다... 고 생각해서 상자를 열었는데 일기장과 받은 편지들이 있었다.
보이는 거부터 하나씩 읽어봤는데 이걸 버릴 수 있을까 싶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 처음 사귄 남자친구가 준 편지까지도 있다. 보면서 결국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네. 이걸 버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들과 꽤나 친했다. 그래서 교무실에서 놀고 그랬다. 왼쪽에 있는 편지는 2015년 04월 30일 목요일에 받은 편지다. 선생님이 문득 생각난다.
누군가의 첫 제자가 된 적도 있었구나. 이걸 정말 버릴 수 있을까?
오른쪽에 있는 편지는 그보다도 전인데 아마 2013년이 맞는 거 같다. 10년 전 내가 중학생 때 받은 편지로 기억한다. 역사를 가르치던 선생님이셨는데 매번 편지를 교환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조언이나 편지를 써주셨지. 기억이 난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이 편지를 해석하려고 컴퓨터 키보드 앞에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친구는 잘 지낼까?
이때는 정말 이런 문답식 편지가 유행이었다. 또 유행인 편지가 있었는데 검은색 하드보드지 편지가 유행을 하고 있었다.
진정한 친구가 없으면 숨이 쉬어지질 않아 우정엔 끝이란 단어는 없다. 나는 왜 그동안 친구의 소중함을 몰랐을까. 어른이 되면서 나는 친구들을 멀리했다.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송이버섯이 써준 편지다. 최근에는 취업 준비로 바빠 보인다. 중학교 때 받은 하드보드지 편지인데 내가 아직도 갖고 있다는 건 모를 거 같다. 애초에 편지를 버린 적이 없었지만 읽어보거나 그러지는 않았는데 버려야 할 수도 있어서 읽어보니 정말 너무 웃겼다.
송이버섯이 이런 말을 적어뒀다. "너한테 준 이 편지도 버리지 않는다면 추억이 되겠지?"
그래. 추억이 된 거 같다.
아 정말. 몇 년 만에 편지를 다시 읽어보니 너무 웃기는 내용들이 많았다. 가운데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우리 반에 어떤 애가 얼마 전에 수술을 받는다는데 그전에 기억을 잃어서 자기랑 싸운 애들한테 화해를 하자고 했다고 해. 수술 전에도 기억을 잃고 막 그러니?"라는 내용에 나도 모르게 박장대소를 했다.
안 본 지 오래된 친구들인데 조만간 봐야겠다. 아마 나는 이 편지들과 일기장을 아직은 못 버릴 거 같다.
고등학교 때는 쉬는 시간이나 남는 시간에 웹툰을 그리는 친구와 나는 소설을 쓰고 이야기와 상상인물을 만들었다. 친구는 지금 만화를 그릴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잘 그리겠지. 친구들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일기장이나 이런 편지를 읽어보며 지금의 나를 생각해 보니 나는 똑같다. 변한 게 없었다. 아침에 늦잠도 자고 저녁에는 배터리가 없어도 충전하는 게 귀찮아서 연락을 미루기도 하고 그런다. 친구들이 준 편지를 읽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내 일기장도 다시 읽어봤다.
아직은 갖고 있기로 했다. 감정 쓰레기 통이 되어버린 내 일기장들도 친구들이 나를 생각하며 써준 편지들도 지금은 갖고 있기로 했다. 최근에 받은 편지들도 상자에 넣었다. 일기장에서 이런 글도 발견했다. 그래서 답장을 쓰며 오늘의 포스팅을 마친다.
To. 미래의 나에게.
안녕? 나는 2016년 9월 20일을 살고 있는 나라고 해.
나는 현실을 잘 다독이며 순간을 열심히 보내려고 하고 있지만 언제나 내 안에서 나에게 충실했으면 좋겠어.
너에겐 행복이 대부분이잖아.
부탁이 하나 있다면 무난하게 살아가길 바라.
생각보다 나는 단순하게 살아가고 있었어. 걱정거리는 내가 가져갈게.
From. 내가.
To. 미래의 나에게.
안녕? 나는 2023년 8월 9일을 살고 있는 나라고 해.
나는 현실을 잘 다독이지 못해 지치기도 하지만 언제나 내 안에서 나에게 충실하고 있어.
나에겐 행복이 대부분이잖아.
부탁이 하나 있다면 편안하게 살아가길 바라.
생각보다 나는 충분하게 살아가고 있었어. 걱정거리는 이제 뒤로하자.
From.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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